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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를 망치고 있는 '제2의 스티브 잡스 찾기'

성공 뒤 가려진 도덕적 해이 문제, 수면 위 드러나...

스티브 잡스는 우리가 기술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 놓았고 그가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러하다. (사진=씨넷닷컴)

(씨넷코리아=이민아 기자) 실리콘밸리에서 스티브 잡스만큼 회자되는 인물도 드물다. 잡스는 1976년 애플을 공동 창업한 후 1985년에 해고되기도 했는데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애플을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기술 기업으로 다시 올려놓은 그의 극적인 복귀는 위대한 미국 기업의 성공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그가 2011년 10월 5일 56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잡스의 그림자는 여전히 기술계를 드리우고 있다. 신제품 발표회에서 감성적인 이야기를 녹여내는 그의 스토리텔링 능력과 단벌신사였던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 없던 검정색 터틀넥 상의, 독단적인 리더십과 비밀주의 경영 방식은 여전히 여기 저기서 모방되고 있으니 말이다.  

1985년 잡스가 겪었듯 누군가 닦아놓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 또한 높지만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라면 마땅히 각오하고 밟아야 할 길이기도 하다.

사회적 통념을 거스르고 다르게 움직이는 혁신적인 기업가들, 잡스도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현대 사회에서 성공을 최우선시 하는 이들의 마음 속에 더욱 깊이 남아있는 듯 하다. 

차세대 잡스를 찾는 과정에서 개인의 윤리적 해이는 간과되는 일이 이따금씩 일어난다. 인기를 업고 승승장구 할 때 인격적인 하자 따위는 묵인되다가 범죄가 매스컴을 타야만 극적으로 추락하는 꼴이 실리콘밸리나 헐리우드판이나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파크 본사, 그의 이름을 딴 극장이 완공된 모습을 잡스는 끝내 보지 못했다. (사진=씨넷닷컴)

기술 산업이 창출한 부와 권력, 성공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용인은 기술 산업을 점점 더 어수선한 상황으로 몰고 있다. 기업의 비밀주의 정책은 혁신적인 제품으로 소비자를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함 보다는 잘못을 은폐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한 사례로 테라노스가 있다. 피 한방울로 250여 종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 개발 소식으로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엘리자베스 홈즈가 세운 신생 기업이다. 그녀는 19세에 스탠포드 대학교를 중퇴, 2003년에 테라노스를 설립하면서 잡스처럼 검은 터틀넥 상의를 입고 중저음으로 목소리를 내리깔며 잡스를 잇는 혁신 기업가로 자신을 포장했다.  

전 세계가 그녀를 찬양했다. 와이어드 매거진은 테라노스의 연구 성과에 감탄하며 홈즈를 “여성 잡스”로 명명했고 경제지 포춘은 2014년 “테라노스는 의료 혁명을 추구한다”고 대서특필했다. 찬사가 이어지던 어느 날, 그녀의 실체가 드러났고 현재는 재판을 받고 있다. 한때 잡스가 증권 거래 위원회에서 스톡 옵션 백데이팅 혐의로 조사를 받은 후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전력이 어쩌면 유사점일 수도 있겠다. 

다큐멘터리 ‘디 인벤터(The Inventor)’ 촬영장에서 엘리자베스 홈즈 (사진=HBO)

세계 최대 승차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Uber)는 사내 성희롱과 남성 중심의 마초적이고 왜곡된 기업 문화로 2017년 위기를 겪었다. 2014년, 공동 설립자인 트래비스 캘러닉이 남성 매거진 지큐(GQ)에서 “우리는 우버를 ‘부버(Boob-er: 여성의 가슴을 뜻하는 Boob과 Uber의 합성어)’라고 부른다”며 자신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인기 있는 남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공공연하게 여성을 성적으로 희화화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세계 최대 오피스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워크(WeWork)다. 공동 설립자인 애덤 뉴먼은 술과 마약에 절은 잦은 파티와 직원들에게 숭배를 강요하는 행동으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지만 2019년에 단독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가 공금으로 개인의 주머니를 채운 만행이 드러난 뒤에야 결국 사퇴했다. 이로 인해 위워크의 기업 가치는 9개월만에 80% 하락했다. 

2015년, 벤처기업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의 회장 존 도어를 상대로 성차별 소송을 제기한 엘렌 파오는 법정 소송에서 결국 패소한 뒤, 지난 달 뉴욕 타임즈에 "기술 투자자들은 괴롭힘과 사기, 차별에 대해 관대한 경향이 있다”며 "이런 문제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해선 안된다. 투자자들이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검찰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잡스는 오늘날 도덕적 결함이 있는 기업가와 그런 행동을 묵인하는 문화에 책임이 없다. 리더의 도덕성 결여는 IT 업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져 있는 문제이기도 하니 말이다. 

수십 년간, 실리콘밸리의 영웅담은 아메리칸 드림의 현대판 역할을 해왔다. 잡스가 스티브 워즈니악, 론 웨인과 함께 애플을 시작한 1970년대 후반은 스태그플레이션과 오일쇼크 중에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한 미국이 불확실한 시기로부터 점차 벗어나고 있는 시기였다. 

잡스는 사람들의 눈 밖에 난 대기업의 CEO 같지도 않았고 전형적인 컴퓨터 괴짜와도 거리가 멀었다.

워싱턴대 역사학과 교수이자 ‘더 코드: 실리콘밸리와 미국의 재건’의 저자기도 한 마거릿 오마라는 잡스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자질 중 하나로 스토리텔링에 대한 능력을 꼽았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단순한 기계로 여기던 때에 컴퓨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도록 영감을 주었는데 구글이나 공공 인터넷이 있기 훨씬 전에도 잡스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를 "손 끝으로 닿을 수 있는 의회 도서관"에 비유했고 이 땅에 많은 부모들이 비디오 게임을 회의적으로 바라볼 때 "기본 원리를 깨우칠 수록 점수를 딸 수 있는 모사된 학습 환경”으로 일컬으며 컴퓨터를 "마음의 자전거”라고 표현했다. 

그가 준 영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술 산업에 남아 생기를 더하고 있다. 팀 쿡은 지난 달 아이폰 13을 발표하면서 애플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제품과 서비스를 디자인한다"고 전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 책임자인 파노스 파네이는 윈도우 소프트웨어를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일을 하고 그들의 꿈을 살고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집”이라고 표현했으며 아마존의 장치·서비스 책임자 데이비드 림프는 그의 부서가 “공상 과학 소설을 현실로 이루기 위한 큰 도약”을 이뤘다고 말했다.

상기에 언급한 우버와 위워크, 테라노스 역시 그들 나름대로의 이야깃거리는 있었다. 

우버는 자사 소프트웨어가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시켜 줄 뿐 아니라 도시 곳곳을 이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며 운전자로서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위워크는 초기 투자자 발표에서 "기술과 인구통계, 도시화의 근본적인 변화 속에서 공간을 창출하고 유연하고 협력적인 작업 스타일을 장려”한다고 말했으며 '테라피(Therapy)'와 '진단(Diagnosis)'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테라노스(Theranos)는 손가락 끝에서 뽑는 “작은 한 방울이 모든 것을 바꾼다"고 약속했다. 특히, 엘리자베스 홈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무엇을 향해 달려갑니까?”라는 질문에 “세상에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늦출 수 있는 그 지점”이라고 답변해 감동을 자아냈다.

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날 밤, 샌프란시스코 스톡턴 가에서 즉흥적으로 열린 추모식 (사진=씨넷닷컴)

기술 세계에서 벌어지는 어긋난 행동들이 어떻게 많은 지성인들로부터 용인되는 것일까? 

업계 근로자들은 “성공이라는 로켓선을 타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CEO들 특유의 강인하고 남을 끄는 성격이 사람들이 그들 자신과 세상을 보는 시각마저 왜곡시켰다”고 말한다.

여기엔 잡스의 사연도 한몫 하는 듯 하다. 한때 공동 CEO였던 존 스컬리가 해외 출장 준비 중인 틈을 노리고 이사회를 소집, 그를 퇴출하려고 꾀를 쓰다가 이사회 멤버들이 오히려 존 스컬리 편에 서는 바람에 잡스는 자신의 손으로 일군 회사에서 그의 나이 서른 살에 해고됐다. 잡스의 독단적인 성격과 애플 신제품을 위한 신비주의에 대한 집착은 부서끼리의 이기주의를 부추기며 사일로화 시켰다. 잡스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일하며 동시에 다른 모든 이들도 그러기를 바랐다.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잡스는 이때를 돌이켜보며 “이전 세대 기업인들이 내게 넘겨준 바통을 떨어뜨린 것 마냥 그들을 실망시킨 기분이었다. (애플에서의 해고 통보는) 삼키기 고통스러운 쓰디쓴 약 같았지만 그때 내겐 그 약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애플에서의 해고 이후, 잡스는 자아 성찰의 시간을 통해 이기적이고 거칠었던 성격을 많이 누그러뜨리고 1996년에 다시 돌아왔지만 본래 성품을 아주 버리지는 못한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직원들에게 즉석 질문을 하고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하면 곧바로 해고시켜버리거나 2006년 월트디즈니 이사회에서는 신제품을 소개하는 ESPN 대표에게 “당신네 전화기는 내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뭣 같다”며 욕설 섞인 피드백을 준 사실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그 해 디즈니는 해당 제품으로 1억3500만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

브랜드 평판 관리 전문가인 에릭 쉬퍼는 잡스는 상대가 불쾌할 수 있는 방식이더라도 어쨌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도덕성이 결여된 인물들이 가끔 경시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잡스는 적어도 직원들이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다그쳤다"면서 “많은 이들이 제2의 잡스가 되려다가 좌초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잡스의 그런 행동은 단순히 악인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틀을 깨기 위함이었고 그만의 굉장히 높은 기준을 상대가 충족시키지 못할 때 그것을 상대가 알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버의 기업 문화를 향한 반발은 기술 산업에 경종을 울렸다. (사진=씨넷닷컴)

실리콘밸리에서 기업가들과 그들의 행동, 그리고 기술 산업에 대한 시각은 어느 정도 변화를 맞은 듯 하다.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을 포함한 많은 대기업들은 지난 7년 동안 직원 기반 내의 다양성과 포함 노력에 대한 정기적인 보고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제품 발표 무대에서 CEO가 돋보이는 시간은 줄이고 더 많은 여성과 유색인종을 채용, 서로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뿌리 박힌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할 순 없었다. 애플은 현재 직원들로 하여금 전례 없는 압박을 받고 있는데 잡스 시절부터 이어져온 회사의 비밀 유지 정책이 직원들로 하여금 비리에 대해 입 닫게 만들고 부서 이기주의가 심화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캘러닉이 2017년 여름 우버의 CEO 자리에서 쫓겨난 후, 그는 기술 산업이 대체로 도덕적 잘못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는데 자신은 그저 "스티브 잡스의 전철을 밟고 있는 중”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테크 기업 전문 뉴스 매체 리코드(Recode)는 캘러닉이 현재 해고된 상태이긴 하지만 잡스처럼 의기양양하게 복귀할 날을 기대 중이라고 보도했다. 

와튼 대학의 쉬(Hsu) 교수에 따르면 그의 모교이자 구글의 래리 페이지부터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까지 실리콘밸리의 많은 설립자들을 배출해 낸 스탠포드 대학을 포함, 학계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 윤리적 문제에 대한 사례를 연구 중이다.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MBA과정을 마치는 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청년이 사촌 동생에게 원격으로 수학을 가르쳐 주기 위해 동영상을 만들어 온라인에 올렸다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보람을 느껴 2008년 무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 ‘칸 아카데미’를 설립, 현재는 200개국에서 6,200만 명이 가입한 온라인 교육 플랫폼으로 성장시킨 살 칸과 같이 긍정적인 효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가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쉬 교수는 “우리는 성공에 대한 의미를 좀 더 폭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변화를 만들고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꼭 악인이 될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좋은 예로 삼을 수 있는 다양한 일화가 있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면 리더가 되지 말고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팔아라”라고 말했던 잡스가 지금 살아서 저 말을 들었다면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잡스지만 적어도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일을 하기를 당부했다. 2005년 스탠포드 연설에서도 그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산물로 얻어진 신조에 갇히지 말라”며 "남들의 의견이 자신 내면의 목소리를 집어 삼키게 놔두지 말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직감을 따를 수 있는 용기”라고 말했다. 이날의 축사는 지금까지 회자되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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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아 기자owl@cnet.co.kr

항상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기 쉽게 기사를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