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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프레임에 갇힌 니콘의 출구전략 "미러리스 센서 더 키운다"

구체적인 센서 크기와 출시 일정은 여전히 ‘오리무중’

14일 한국을 찾은 니콘 영상사업부문 총괄 고큐 노부요시(御給伸好) 영상사업부장.

(씨넷코리아=권봉석 기자) “니콘1은 J5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국은 물론 전세계 소비자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미러리스 카메라다. 단 많은 소비자들이 니콘1보다 더 큰 센서를 단 제품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제품을 지금 개발중이다”

14일 한국을 찾은 니콘 영상사업부문 총괄 고큐 노부요시(御給伸好) 영상사업부장의 발언이다. 니콘 창립 10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고큐 영상사업부장이 던진 이 한 마디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고큐 영상사업부장은 니콘이 2012년 이후 계속해서 개발하던 미러리스 카메라, 니콘1 시리즈의 방향 전환을 예고했다. 13.2×8.8mm에 불과한 작은 센서를 벗어나 캐논이나 소니 등 다른 회사와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센서를 단 미러리스 카메라를 내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소니 “문제는 판형이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파나소닉과 올림푸스가 마이크로포서드(18.0×13.5mm) 규격을 내세운 제품을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작고, 얇고, 가벼워 휴대하기 편하면서 렌즈를 교환할 수 있어 상황에 맞게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마이크로포서드의 지항점이었다. 애초에 화질과 화소의 크기가 우선사항은 아니었다.

‘기존 카메라보다 작고 가볍지만 쓸만한 카메라’라는 미러리스 카메라의 상식은 2010년 소니가 출시한 미러리스 카메라, NEX-5로 뒤집히기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카메라 제조사가 시장 잠식(카니발라이제이션)을 우려해 쓰지 못했던 APS-C(25.1×16.7mm) 센서를 과감히 탑재했기 때문이다.

2010년 소니가 출시한 미러리스 카메라, NEX-5

APS-C 센서는 흔히 ‘크롭 바디’라 불리는 DSLR 카메라에 아직도 널리 쓰이는 센서다. 니콘이미징코리아가 14일 출시한 D7500이나 캐논이미징코리아가 출시한 보급형 DSLR의 스테디셀러, 100D도 같은 크기의 센서를 쓴다. 한 마디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쓰는 DSLR 카메라에는 십중팔구 APS-C 센서가 탑재된다.

DSLR 카메라에 강점을 지니던 캐논이나 니콘은 미러리스에 대한 언급을 꺼렸다. 콤팩트 카메라나 보급형 DSLR 카메라의 시장 점유율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함부로 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기득권에서 자유로운 소니는 기꺼이 그 상자를 열었다.

삼성이 던지고 소니가 화답한 꽃놀이패, APS-C

물론 큰 센서는 당연히 여러가지 이점을 지닌다. 같은 각도와 구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배경흐림 효과를 연출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보다 노이즈가 적은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올림푸스/파나소닉에 비해 렌즈군과 액세서리 등 ‘시스템’이 빈약한 소니는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지고 있는 센서에 명운을 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며 감행한 도박은 ‘통했다’.

삼성전자 첫 미러리스 카메라 NX10. APS-C 센서를 달았다.

DSLR 카메라처럼 렌즈를 바꿔 끼울 수 있지만 부피와 무게는 덜 부담스럽고 화질은 비슷하다는 소니의 메시지가 소비자들에게 먹혔다. 2011년 국내 미러리스 시장에서 NEX-5가 30% 이상의 점유율을 달성한 것이다. 이 수치는 이후 소니가 국내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의 ‘선두주자’(?)로 나서는 데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비슷한 시기에 미러리스 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도 첫 제품인 NX10에 ‘기존 DSLR에 사용되는 APS-C규격의 1,460만 화소의 대형 이미지 센서’를 탑재하면서 “고화질과 휴대성, 사용편의성을 갖춘 전략 카메라“로 포장했다. 결국 2010년 이후 미러리스 카메라의 표준 센서는 APS-C로 굳어지기 시작한다.

숫자의 프레임에 빠진 니콘

미러리스 시장이 하이엔드 콤팩트 카메라와 보급형 DSLR을 압박하던 2011년, 결국 니콘도 ‘니콘1′을 앞세워 미러리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니콘은 당시만 해도 이 카메라에 대해 ‘하이브리드 카메라‘라는 명칭을 고집했다. “프리미엄 카메라로 봐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니콘 미러리스 카메라, 니콘1 시리즈에 대한 반응은 곱지 않았다. 탑재한 센서 크기가 소니 RX100 시리즈와 큰 차이 없는 1인치(13.2×8.8mm)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카메라 회사가 처음 만드는 미러리스라면 그래도 평균은 할 것”이라던 소비자들의 기대는 이미 이 시점에서 증발했다.

니콘1 카메라는 ‘미러리스’가 아닌 ‘센서리스’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올림푸스·파나소닉이 처음 내세운 규격인 마이크로포서드(18.0×13.5mm)보다 훨씬 작은 센서를 단 니콘1 시리즈를 소비자는 외면했다. 센서 크기가 화질의 전부는 아니라는 목소리는 묻혔다. 결국 니콘1 카메라는 ‘미러리스’가 아닌 ‘센서리스’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캐논은 니콘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2012년 10월 처음 등장한 EOS M은 ‘EOS 650D에 사용되는 것과 똑같은 APS-C 타입의 대형 이미지 센서를 탑재했다’며 ‘센서 크기=화질’이라는 등식을 다시 내세웠다. 니콘이 강력한 ‘숫자의 프레임’에 갇히고 만 것이다.

EOS M은 ‘센서 크기=화질’이라는 등식으로 니콘을 ‘숫자의 프레임’에 가뒀다.

완곡한 항복 선언 “소비자가 원한다면⋯”

결국 직접 카메라를 다루고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며 차이를 확인할 기회가 적은 소비자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를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밖에 없다. 소니와 삼성전자(지금은 철수한)는 이 맹점에 집중했고, 캐논은 니콘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차이는 크다. 소니와 캐논이 국내 미러리스 시장 맹주를 다투지만 니콘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14일 니콘 창립 10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고큐 노부요시 영상사업부장 역시 이를 인정했다. 그는 “소비자들은 큰 센서를 선호하지만 반드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센서가 커지면 카메라 크기도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여기까지는 그동안 니콘이 주장한 바와 일치한다.

고큐 사업부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1인치 미러리스가 아니라는 것은 니콘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음 발언의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고 해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1인치 미러리스가 아니라는 것은 니콘도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1인치 센서보다 더 큰 크기의 센서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발언은 지금까지 일본 국내를 포함해 어느 곳에서도 나온 적이 없다. “우리의 원칙은 맞지만 소비자가 원하면 검토하겠다”는,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완곡한 항복 선언이다. 강력한 숫자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음도 엿볼 수 있다.

1인치 니콘1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센서를 키운 니콘 미러리스 카메라가 등장하면 자연히 1인치 니콘1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 1인치 니콘1의 방향에 대해 질문하자 고큐 노부요시 영상사업부장은 “니콘1은 호조를 보이는 제품이므로 그대로 지속할 예정이다. 단 회사(니콘)의 판단은 시장을 보면서 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따라서 니콘 1인치 미러리스 카메라는 소비자의 선택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철수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꼽힌다.

고큐 노부요시 영상사업부장은 “현재 개발중인 미러리스 카메라는 여러분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제품이며 또 이런 제품을 내놓겠다는 의지에도 변함이 없다. 단 출시 시기와 탑재 센서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니콘 1인치 미러리스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

권봉석 기자bskwon@c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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