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넷코리아=김상연 기자)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가정용 비디오 표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소니는 베타맥스로, 도시바는 VHS로 맞붙었지만 승리한 쪽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VHS다. 녹화 시간과 화질 등 모든 면에서 베타맥스에 뒤졌던 VHS 규격이 왜 살아 남았을까?
일부 사람들은 이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는다. 당시 가장 큰 시장이었던 미국에서 성인용 비디오를 VHS 방식으로만 만든게 그 이유라는 것이다.
성인용 비디오를 만들고 유통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는데는 베타맥스보다 VHS가 더 유리했고 이 때문에 VHS의 점유율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베타맥스를 시장에서 밀어낸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다.
첨단 기술 발전에 도움 준 것은 ‘성인 콘텐츠’?
신기술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보급되는 데 음지에서 힘을 보탠 것이 성인 콘텐츠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각종 영상처리 기술이 발전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그림 파일만 해도 그렇다.
컴퓨터 영상처리를 공부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실습 재료로 이용하는 이미지 파일인 ‘레나‘는 1972년 11월 플레이보이에 실렸던 모델 사진 중 일부를 스캔한 것이다. 당시 이 사진에 등장한 스웨덴 여성, 레나 소더버그는 2015년 영상처리 컨퍼런스에 초대받기도 했다.
키보드와 글자 위주 인터넷 환경이 1990년대 중반부터 마우스와 그래픽 위주 환경인 월드와이드웹(WWW)으로 변화하는 과정에도 성인 콘텐츠가 알게 모르게 기여했다.
3G보다 느린 56kbps 전화모뎀 속도로 동영상을 보여주려다 보니 스트리밍 기술이 등장했고 매달 이용료를 신용카드로 받다 보니 암호화나 인증처럼 전자상거래의 기초가 되는 기술도 자연스레 발전했다.
20년 뒤를 현실적으로 내다본 ‘데몰리션맨’
1993년작 SF영화 ‘데몰리션맨’에는 두 주인공이 VR 기술을 이용해 실제 접촉 없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런 기술은 그야말로 먼 미래에 등장하거나 아예 만들어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데몰리션맨은 20년 뒤 미래를 꽤 현실적으로 내다본 셈이다. VR 기술이 채 무르익기도 전인 2016년 초부터 VR 기술을 활용한 각종 콘텐츠가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구동되는 VR 헤드셋, 기어VR이 등장하자 난데없이 ‘우동’을 검색하는 이들도 급격히 늘어났다.
날로 발전하는 VR 기술은 단순히 보는 것에서 벗어나 직접 참여하고 싶은 이들을 만족시켜 주기 위한 제2단계에 들어섰다. 화면에 등장하는 캐릭터에게 좋아하는 옷을 입히는 것부터 시작해 상상해 왔던 모든 것을 눈 앞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유혹임에 틀림없다.
가장 앞서 나가는 국가는⋯
이런 VR 콘텐츠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국가는 다름아닌 일본이다. 평면 속에만 존재하는 2차원 캐릭터를 가장 매력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인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데다 성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했다.
VRJCC가 개발한 게임, ‘나나이와 놀자!’는 제목 그대로 여성 캐릭터 나나이가 등장한다. 공기 주입식 인형에 스마트폰을 부착하고 연동하면 화면속에서 그대로 움직이는 기능까지 갖췄다. 2016년 12월 말 열린 일본 최대 만화·애니메이션 행사, 코믹마켓 91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이 게임을 개발한 VRJCC 대표인 ‘회장’과 프로그래머 ‘로바’가 한국을 찾는다. 이들은 오는 3월 9일 코엑스에서 열리는 VR 엑스포 2017 컨퍼런스에 참여해 일본 성인 VR 콘텐츠 시장에 관한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단 내용은 어디까지나 진지하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VR 엑스포 2017이란
VR 엑스포 2017은 오는 9일(목)부터 11일(토)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 VR 전시회다. 게임과 여행, 헬스케어와 교육, 각종 소비자용 주변기기 등 총 40여개 업체가 참여하며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VR 콘텐츠 체험 코너도 마련된다.
부대 행사로 진행되는 컨퍼런스는 9일과 10일 양일간 열린다. 게임과 영상, 의료, 마케팅 분야 실무자들이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펼친다. 9일 오전 진행되는 기조 연설에는 밸브 코퍼레이션과 함께 VR 헤드셋을 개발한 HTC 김도웅 부사장도 참여한다.
이 행사는 올해 처음 열리며 무료 입장 가능한 현장등록은 마감된 상태다. 당일 현장에서 1만원을 내면 입장이 가능하며 컨퍼런스는 유료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