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넷코리아=권봉석 기자) (사진은 27일 출시된 X400 SSD)
※ 편집자 주 (1/28 00:10) : 샌디스크는 1월 27일 행사가 OEM 제품을 소개하는 행사였으며, 수하스 나약 매니저의 발언이 “일반 소비자용 제품이 아닌 OEM 업체에 공급하는 SSD를 모두 TLC 플래시 메모리로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해명하였습니다. 관련 내용을 검토한 후 해당 제품(X400 SSD)의 특성을 왜곡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기사 제목과 본문을 수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샌디스크는 앞으로 PC 제조업체 등 OEM에 공급하는 SSD를 모두 TLC 플래시 메모리로만 만들 것이다” 27일, 샌디스크 SSD 신제품인 X400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본사 마케팅 총괄 수하스 나약 매니저가 이와 같이 밝혔다. 삼성전자, 인텔에 이어 세계 3위 업체인 샌디스크가 ‘TLC행’을 선언하며 MLC 플래시 메모리를 쓴 SSD의 입지는 앞으로 더 좁아질 전망이다.
두께 1.5mm에 불과한 1TB SSD
샌디스크가 이날 소개한 X400은 PC를 제조하는 OEM 업체에 공급되는 제품이다. SATA 방식이지만 최대 읽기 성능과 쓰기 성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고 TBW(쓰기보증용량)도 128GB 제품이 72TBW, 1TB 제품은 320TBW나 된다. 하루에 80GB씩 쓰는 가혹한 환경에서도 128GB 제품이 3년, 1TB 제품이 11년을 버틴다.
흥미로운 것은 128GB 제품과 256GB 제품의 TBW가 각각 72TBW, 80TBW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샌디스크코리아 관계자는 “256GB 제품의 성능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128GB 제품의 신뢰성을 끌어올린 것이다. 내부에 임시로 데이터를 담아 두는 영역(n캐시)의 플래시 메모리 비율을 조절한 결과다”라고 설명했다.
X400은 일반 SSD보다 두께가 얇고 부피가 적은 M.2 방식으로도 나온다. 1TB 제품의 두께를 1.5mm까지 줄인 것이 눈에 띈다. 수하스 나약 매니저는 “얇고 가벼우면서 속도가 빠른 노트북을 만들어야 하는 PC 제조업체 요구사항을 반영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두께 줄인 비결, “TLC 플래시 메모리”
샌디스크가 M.2규격 SSD의 두께를 1.5mm까지 줄인 원리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 예전만 해도 기판 양면에 플래시 메모리를 달아야 했지만 이 제품은 기판 한 면에만 플래시 메모리와 컨트롤러 칩을 달았다. 하지만 1TB나 되는 용량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플래시 메모리에 정보를 담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셀(cell)에 2비트가 아닌 3비트씩 정보를 담는 TLC 플래시 메모리를 쓴 것이다(TLC 플래시 메모리의 작동 원리는 ▶︎ 아이폰6 플러스 리콜 해프닝, 전말은… 기사 참조). 다시 말해 플래시 메모리는 절반 가량 적게 쓰면서 용량은 그대로다.
수하스 나약 매니저는 “메모리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기업인 포워드인사이츠는 2016년 한 해 SATA, TLC 방식 256GB 이상 SSD가 가장 많이 팔릴 것으로 내다봤다. 샌디스크 역시 TLC 플래시 메모리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기술적 바탕이나 생산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플래시 메모리도 우수한 제품만 골라 쓸 정도다”고 설명했다.
“대세는 TLC, 이제 인텔만 남았다?”
TLC 플래시 메모리는 생산 단가를 줄이면서 용량을 늘릴 수 있다는 이점을 지녔다. 단가 경쟁에 쫓기는 여러 PC 제조 업체에는 MLC 플래시 메모리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이미 TLC 플래시 메모리로 방향을 튼 업체는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마이크론, 도시바도 TLC 플래시 메모리를 층층이 쌓아 용량을 높였다. 샌디스크 역시 2014년 울트라Ⅱ를 내놓은 적이 있다. 시장에서는 “인텔도 머지 않아 TLC 방식에 손을 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사실 TLC 플래시 메모리를 쓴 SSD는 이미 여러 곳에 공급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2015년부터 애플 12인치 맥북이나 맥북프로 등에 공급하는 SSD는 전량이 TLC 방식이다. 애플 아이폰도 2015년부터 TLC 방식과 MLC 방식 저장장치를 동시에 공급받는다. 이를 확인하려면 외부 앱을 설치하거나 제품을 분해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하지만 소비자가 실제로 성능 차이나 수명 문제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OEM용 제품은 앞으로 TLC만 나올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TLC 플래시 메모리를 둘러싼 소비자들의 눈초리는 여전히 곱지 않다. 초기에 출시된 일부 SSD에서 발생한 성능 저하 문제는 여러 번 업데이트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 고질병으로 각인됐다. 2014년 아이폰6 출시 당시 TLC 플래시 메모리를 두고 벌어졌던 논란은 기억에 새롭다.
수하스 매니저는 “성능 저하는 일부 설계가 잘못된 MLC 플래시 메모리 기반 SSD에서도 나타나는 문제다. 하지만 이것은 최적화 문제이지 TLC 플래시 메모리 자체의 품질이나 특성과는 무관하다. TLC 방식 SSD를 이미 글로벌 PC 제조사 등에 납품했지만 성능 저하 문제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 “X400은 일본에서 제조된 웨이퍼를 바탕으로 말레이시아 자동화 공정에서 생산되며 엄격한 품질 검사를 거친다. SSD에는 직접 생산한 고품질 플래시 메모리를 투입하고 있다. 이미 500개 이상의 OEM 업체 품질 검사를 통과했고 간단한 서버에도 충분히 쓸 수 있을만큼 고품질 제품이다”라고 설명했다.
TLC SSD “오해를 어떻게 푸나”
샌디스크는 X400을 시작으로 앞으로 모든 OEM용 SSD 제품에 TLC 플래시 메모리만 적용해 생산할 계획이다. 하지만 샌디스크가 MLC 방식 SSD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수하스 매니저는 “산업용이나 엔터프라이즈용 등 특수 용도로는 여전히 MLC 기반 SSD를 생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단가를 따지는 OEM용 제품과 달리 일반 소비자용 제품은 단가가 다소 오르더라도 MLC 플래시 메모리를 충분히 쓸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OEM용으로 대량 공급된 SSD가 유통사를 거쳐 용산전자상가나 오픈마켓에 낱개로 풀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2015년 출시된 Z400s만 해도 원래는 OEM용 제품이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초저가 SSD’라는 이름 아래 보증기간을 낮추고 시장에 저렴한 가격에 풀렸다. 문제는 일반 소비자가 X400을 구입하는 경우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가격만 따진다.
TLC 플래시 메모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소비자는 자연히 ‘속았다’, ‘비싸게 샀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초기 TLC SSD가 국내 시장에 큰 후유증을 남긴 셈이다. 하지만 이런 오해를 풀 수 있는 수단은 여전히 여러 제조사의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