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넷코리아=권봉석 기자) 마이크로소프트가 다시 스마트폰 시장을 정조준했다. 미국시간으로 17일(수) 발표된 임원 인사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기기(디바이스)를 담당했던 스티븐 엘롭 부사장을 퇴진시켰다. 디바이스 그룹은 테리 마이어슨 부사장이 이끄는 윈도 운영체제 그룹과 조만간 통합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 CEO는 전체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는 기술적인 역량과 능력을 세 가지 중요한 전략을 실천하기 위해 가다듬고 있다. 이런 변화는 고객들이 반길만한 더 나은 제품을 더 빠른 페이스로 전달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라고 밝혔다.
끊임없는 윈도 경험 위한 포석
이번 조직 개편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시장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다. 윈도10을 가능한한 많은 기기에 보급하고 이들 기기가 서로 연동되게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아붓는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모바일 시장에서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기기로 꼽히는 스마트폰을 잡지 못하면 자연스레 연결되는 윈도 경험은 성립될 수 없다.
시장분석기관인 포레스터 리서치 애널리스트인 프랭크 질렛은 “이번 마이크로소프트 조직개편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모바일 분야의 노력은 윈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질 때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전히 생소한 윈도폰, 한국은 ‘윈도폰 불모지’
많은 사람들에게 윈도 운영체제가 들어간 스마트폰, ‘윈도폰’은 생소하기 그지 없다. HP(구 컴팩) 아이팩, 소니 엑스페리아 X1 등 윈도 모바일 운영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판쳤던 몇 년 전과는 딴판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15년 1분기 윈도폰의 점유율은 2.5%에 그쳤다. 안드로이드가 80%, 아이폰이 18%를 차지하는 전체 시장에서 말석을 차지하는 데 그친 것이다.
국내 상황은 더 처참하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2011년 KT와 손잡고 윈도폰 7.5를 탑재한 3G 스마트폰인 노키아 루미아 710을 출시했다. 2012년 초에는 X박스360 패키지와 함께 할인판매까지 했지만 결과는 시원찮았다. 쓸만한 앱이 부족한데다 인지도도 낮았고 LTE 바람이 불던 당시 시장에 3G 스마트폰을 투입한 것은 패착이었다.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이 과점체제를 형성한 국내 시장에서 윈도폰은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보조금이 넘쳐나며 왜곡된 이동통신 시장도 한 몫을 했다. 보조금을 투입할 여력이 없는 외산 스마트폰, 혹은 중소 규모 업체 스마트폰이 살아남기 힘든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윈도폰 불모지다. “국내에서 윈도폰을 쓰는 사람은 호사가 아니면 마이크로소프트 직원 뿐”이라는 농담도 공허하게 들릴 정도다.
물론 스티븐 엘롭도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줄곧 마이크로소프트에 몸담았던 그는 2011년 노키아로 옮겨간 다음 4년 동안 스마트폰 사업을 지휘해 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 스마트폰 사업부를 인수한 2014년 그는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출시된 스마트폰들은 ‘하이엔드’, ‘플래그십’ 보다는 개발도상국을 겨냥한 보급형 제품이 대다수였다.
4천100만 화소 사진을 찍는다는 노키아 퓨어뷰 808 등 일부 제품이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반짝 효과에 그쳤다. 결국 스티븐 엘롭은 지난 4월 빌드 2015 컨퍼런스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다.
모바일과 데스크톱, 따로 또 같이
스티븐 엘롭이 극복하지 못했고 지금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발목을 잡는 것은 바로 앱이다. 구글 안드로이드나 애플 iOS와 비교해 사람들이 자주 쓰는 앱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이다. 윈도 앱스토어에서 폴아웃:셸터나 스냅챗 등 자주 쓰이는 앱을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윈도 운영체제가 탑재된 태블릿으로 게임을 즐기기란 쉽지 않으며 이런 현상은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윈도RT 기반 서피스 태블릿이 앱 때문에 실패한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 3월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주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제조업체 대표로 참여했던 포유디지털 이승종 이사의 당시 발언을 그대로 옮겨본다. 포유디지털은 안드로이드 태블릿 시장에서 윈도 태블릿 시장으로 넘어와 ‘아이뮤즈’ 브랜드로 다양한 윈도 태블릿을 내놓고 있는 업체다.
“윈도 태블릿을 처음 구매하는 소비자에게서 기능을 잘 모르고 인터페이스에 생소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의사항이 많이 접수된다. 그 이외에도 애플리케이션, 특히 게임이 부족하다. 안드로이드 태블릿 수준의 게임을 기대하고 윈도 태블릿을 샀다가 환불받고 안드로이트 태블릿으로 교환하는 사람도 많다”
이에 대해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디바이스 파트너 사업부 장흥국 상무는 이에 대해 “윈도 태블릿에 앱이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며 윈도10부터 도입될 유니버설 앱을 통해 윈도 앱을 개발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반론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림수는 PC와 태블릿, 스마트폰 등 모든 기기에서 쓰이는 윈도10 뒤에 숨은 기반 구조다. 이 기반구조는 개발자들이 한 기기용으로 개발한 앱을 다른 기기로 쉽게 옮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모든 윈도 이용자들이 쓸 수 있는 앱이 늘어난다는 측면에서는 희망적이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8이 나올 때도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그 때는 모바일 환경과 PC 환경에 구조적인 차이가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테리 마이어슨을 수장으로 새로운 그룹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그동안 동떨어져 있었던 두 분야를 한데 묶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서피스3 프로로 자존심은 지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모바일 분야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바로 태블릿이다. 서피스3 프로는 다국적 기업에 대량 납품된 것을 시작으로 많은 소비자들, 특히 태블릿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2015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서피스를 전개하는 하드웨어 사업부가 수십 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애플 아이패드가 기업용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지 못하고 아이패드 프로에 대한 루머가 흘러나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심지어 스티븐 엘롭도 ‘다음 마이크로소프트 플래그십 스마트폰은 서피스3 프로에서 영감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새 운영체제에 걸맞는 하이엔드 윈도폰이 필요하다
아무리 윈도10 모바일이 뛰어난 운영체제라 해도 이에 걸맞는 플래그십 스마트폰이 없다면 소비자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테리 마이어슨이 해야할 일 중 우선순위에 놓인 일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로운 플랫폼인 윈도10 모바일을 출시할 때 이를 뒷받침할 뛰어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기존 윈도폰은 개발도상국에서 저렴한 스마트폰으로 인기가 높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런 제품들은 삼성전자 갤럭시S6, 혹은 애플 아이폰6처럼 광고를 물량공세로 쏟아붓고 일선 판매점에서도 추천해 주는 제품에 밀리기 십상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서피스3 프로로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다. PC 제조사가 윈도10 발표와 동시에 윈도10 탑재 기기를 일제히 내놓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기정 사실이나 다름없다. 컴퓨텍스 2015 마이크로소프트 기조연설에서 관련 기기가 쏟아진 것만 해도 이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이크로소프트가 달라졌고 소프트웨어와 경험이 기기에서 기기로, 책상에서 손 위로 옮겨다녀도 일관성이 유지된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주려면 고성능 제품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름 있는 제조사들은 여전히 윈도폰에 관심이 없다. 갈길이 여전히 멀고 험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