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넷코리아=권봉석 기자) 2010년 넥서스 원이 등장한 이후 매년 가을마다 안드로이드 마니아를 설레게 했던 넥서스 스마트폰은 이제 더 이상 없다. ‘픽셀’(Pixel)이라는 이름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올 때만 해도 사람들은 단순히 ‘넥서스’가 ‘픽셀’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아니었다. 구글이 직접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넥서스 프로그램의 의미는⋯
구글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추진해 왔던 넥서스 스마트폰 프로그램의 의의는 두 가지다. 첫째는 그 해 선보이는 새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가장 잘 돌아가는 스마트폰을 선보이는 것이며, 둘째는 구글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하드웨어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는 모두 안드로이드 앱 개발자를 위한 것이다. 이런 특성 탓에 넥서스 스마트폰과 태블릿에는 구글 안드로이드가 거의 그대로 담겼다. 삼성전자나 LG전자, 화웨이, 소니 등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가 주는 안락함은 없다.
이런 특성 탓에 넥서스 스마트폰은 안드로이드 마니아에게 ‘구글 안드로이드를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적당한 가격대의 스마트폰’으로 통했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이 등장하기 전에는 보조금을 많이 얹어 다른 이동통신사 가입자를 뺏어오기 위한 실탄으로 쓰였을 정도다. 할부원금 17만원, 19만원, 심지어 5만원에 풀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제조사를 성장시킨 넥서스 프로그램
구글이 넥서스 스마트폰을 만들면서 손잡은 제조사를 살펴보면 하나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해 넥서스 스마트폰이 나오는 시점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는 제조사에 스마트폰 제조를 맡겼다는 것이다.
2010년 넥서스원(HTC), 넥서스S(삼성전자), 2011년 갤럭시 넥서스(삼성전자), 2012년 넥서스4(LG전자), 2013년 넥서스5(LG전자), 2014년 넥서스6(모토로라), 2015년 넥서스5X(LG전자)와 넥서스6P(화웨이)까지, 지금까지 나온 넥서스 스마트폰 제조사를 보아도 이것은 명백해 보인다.
넥서스 스마트폰 프로그램은 제조사에도 나름대로의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넥서스 스마트폰 출시 전 구글이 제공하는 미공개 안드로이드 소스를 먼저 접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넥서스 스마트폰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소프트웨어를 상향평준화 시키는데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한 셈이다.
‘표준’이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2010년 넥서스원과 넥서스S, 2011년 갤럭시 넥서스가 등장할 때만 해도 넥서스 스마트폰은 최상위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스마트폰으로 통했다. HTC만 해도 넥서스원에서 얻은 노하우를 이용해 형제나 다름없는 스마트폰인 디자이어를 개발했을 정도다. 넥서스S는 갤럭시S의 거의 모든 부분을 그대로 가져오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런 추세는 2012년부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2012년 나온 넥서스4는 LG전자가 그 해 개발한 스마트폰, 옵티머스G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며 2013년 나온 넥서스5는 G2와 많은 것이 닮았다. 넥서스6는 모토로라 스마트폰인 모토X와 너무나 흡사하다.
물론 이것은 되도록 단가를 낮추고 싶은 구글과 ‘팀킬’을 피하고 싶은 제조사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서 벌어진 일이다. 제조사는 넥서스 스마트폰을 만들지만 이것은 어디나 구글의 상품이다. 가격 결정권조차 구글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넥서스 스마트폰에 고성능 하드웨어를 넣었다가 구글이 가격을 내리기라도 하면 그 후폭풍이 어디로 돌아올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결국 넥서스 스마트폰은 ‘표준’이지만 ‘최고’의 스마트폰이 될 수는 없었다.
감독이 그라운드에 직접 뛰어들었다
넥서스 스마트폰은 엄밀히 말하자면 구글이 ‘기획한’ 것이지 구글이 ‘만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픽셀 스마트폰은 구글이 ‘만들었다’. 안드로이드 오픈소스에 거의 아무것도 보태지 않았던 넥서스 스마트폰과 달리 픽셀 스마트폰은 독점 탑재되는 서비스를 여럿 갖췄다.
사진과 동영상을 해상도 저하 없이 원본 그대로 무제한으로 클라우드에 자동 보관하는 서비스, 개인화된 음성비서 서비스인 구글 어시스턴트는 픽셀 스마트폰에서만 쓸 수 있다. 애플 아이클라우드 사진보관함이나 시리가 연상된다. 지금은 이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보았다면 분명 ‘카피캣’을 외쳤을 것이다.
한 단계 낮은 하드웨어를 쓰던 넥서스 스마트폰과 달리 픽셀 스마트폰은 최신 하드웨어와 디스플레이를 아낌없이 썼다. 스냅드래곤 821 프로세서나 카메라, 지문인식 센서나 디스플레이만 보아도 그렇다.
운영체제를 다른 회사에는 공개하지 않는 애플과 달리 구글은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에 운영체제를 공급한다. 하지만 앞으로 구글이 만든 모든 서비스는 픽셀 스마트폰에(그리고 픽셀 스마트폰에만) 탑재될 것이다.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에는 더없이 불공정한 경쟁이다.
‘퓨어 구글’을 내세우던 넥서스 프로그램은 이제 더 이상 없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는 넥서스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여러 제조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축구 감독이 골을 넣겠다고 직접 그라운드에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구글의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