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넷코리아=권봉석 기자) 트랙패드 왼쪽에 홈이 파인 맥북프로에 두꺼운 플라스틱 카드를 올려놓자 바탕화면에 이동식 디스크 아이콘이 나타난다. 바탕화면에 있는 2GB짜리 동영상 파일을 복사하자 불과 몇 초만에 복사가 끝난다.
이번에는 약간 두꺼운 케이스를 씌운 스마트폰을 독에 올려 놓자 윈도우 운영체제 바탕화면에 마찬가지로 이동식 디스크 아이콘이 나타난다. 700MB짜리 파일이 순식간에 복사된다. 1일, 무선 전송 기술 전문 기업인 키사가 시연한 기술들이다.
키사(Keyssa)는 2014년 11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만들어진 회사다. 금속 단자나 케이블 없이 두 기기를 연결할 수 있는 키스 테크놀로지를 개발했고 CES 2016에서는 혁신상을 수상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삼성촉진펀드와 SK하이닉스, 폭스콘 등 여러 투자자를 통해 7천만 달러 가량을 투자받기도 했다. 첫 번째 해외 사무소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사가 있는 한국을 택했다.
케이블을 전자파로 바꾼 것 이외에는 차이 없다
케이블 없이 무선으로 데이터를 주고 받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와이파이만 해도 AP(액세스 포인트) 이름이 제대로 잡히는지 확인을 해야 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한 다음 기다려야 한다. 초보자들은 블루투스 헤드셋과 스마트폰을 연결하는 것도 힘겨워한다. 두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가져다 대면 쓸 수 있다는 안드로이드 빔도 사실상 죽은 기술이나 마찬가지다.
굳이 키스 테크놀로지로, 아니 무선으로 데이터를 주고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스티브 베누티 부사장은 “키스 테크놀로지는 정확히 말하자면 무선 연결이 아니라 기기와 기기 사이 연결이다. 와이파이나 블루투스와는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이렇다. 키스 테크놀로지 칩을 단 두 기기를 가까이 가져다 놓으면 두 칩 사이에서 마이크로파가 오가면서 데이터를 주고 받는다. 기기와 기기 사이를 연결하는 케이블을 30GHz에서 300GHz에 위치한 주파수인 밀리파(EHF)로 바꾼 것 이외에는 차이가 없다.
“지금까지 나온 기술과는 다르다”
키스 테크놀로지는 지금까지 나왔던 무선 전송 기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복잡한 칩과 안테나를 달고 전파수신율을 걱정해야 했던 다른 기술과 달리 쌀알 두어 개 크기만한 칩만 내장하면 된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높은 주파수 대역으로 데이터를 주고 받기 때문에 전송 속도도 빠르다. 현재 최대 속도는 6Gbps이고 기존에 나온 기술인 USB 3.0, SATA2 규격과도 호환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키스 테크놀로지와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진 기술이 많다. 도시바가 2012년 선보인 고속전송 기술인 트랜스퍼젯도 그 중 하나다. 이 기술은 주로 메모리카드와 스마트폰, 디지털 카메라 사이에 사진 파일을 주고 받는 용도로 쓰인다. 최근에는 전송속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도 했다.
트랜스퍼젯과 키스 테크놀로지의 차이점에 대해 묻자 스티브 베누티 부사장은 “트랜스퍼젯도 키스 테크놀로지처럼 두 기기를 가까이 가져가면 작동한다. 하지만 이 기술을 실제로 기기에 적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비싸고 전력소모도 크다. 속도도 500Mbps로 우리 기술의 10% 수준이다”라고 답했다.
또 “키스 테크놀로지는 처음부터 수십억 대 규모로 대량생산을 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비용이나 전력소모, 비용 면에서 더 유리한 기술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무궁무진한 활용도⋯”여러 제조사와 논의중”
현재 키스 테크놀로지가 적용되어 시중에 나온 제품은 에이서 투인원인 아스파이어 스위치 12S가 유일하다. 이 제품은 화면과 프로세서, 메모리, SSD가 달린 태블릿과 키보드를 연결하기 위해 키스 테크놀로지를 썼다. 다른 노트북이라면 금속 단자가 있어야 할 부분이 매끈하고 화면과 노트북을 고정하기 위한 지지대만 보인다.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 USB 플래시 메모리나 SSD, 노트북에 키스 테크놀로지가 적용되면 일일이 케이블을 꽂고 와이파이나 블루투스를 켤 필요 없이 가까이 놔두기만 하면 자유롭게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스티브 베누티 부사장은 모듈형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던 LG전자 G5를 예로 들면서 “모듈식 디자인이 컴퓨터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5GB가 넘는 대용량 파일을 빠르게 전송할 수 있고 디스플레이포트 규격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영상도 스트리밍할 수 있다. 심지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안에서 각종 기판을 연결하는 데 쓰이는 특수 케이블도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어떤 제품이 나올 지 묻는 질문에 그는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일본 등 많은 회사가 비슷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여러 제조사와 이야기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도 사무소를 만들 것이다”라고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