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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노벨, 누구를 잡아야 하나 "마니아냐 대중이냐"

국내 비주얼 노벨이 살아남을 방법은⋯

좁디 좁은 국내 비주얼 노벨 시장, 누구를 잡아야 할까?

(최지호) (그림은 캐나다 개발자가 만들어 스팀에서 인기를 끈 Analogue: A Hate Story)

※ 편집자 주

1) 이 칼럼은 ▶︎비주얼 노벨, 웹소설 ‘버프’ 받아 뜰까? 를 먼저 읽고 오시면 보다 이해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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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어에서는 비주얼 노벨이 인기 짱?

최근 스마트폰 앱 시장에는 마니아들은 잘 알지만 대다수 일반인은 잘 모르는 ‘비주얼 노벨’이 가끔 등장한다. 구글플레이 인기 유료 앱 50위권 안에 비주얼 노벨이 14%나 되고, 티스토어의 게임 분야 월간 TOP10에서는 놀랍게도 비주얼 노벨이 6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2016년 2월 15일 티스토어 월간 유료 게임 TOP 10 순위. 1,3,4,5위 모두 비주얼 노벨이다.

티스토어는 구글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와 달리 이용자 연령층이 10대-20대 중반에 압도적으로 몰려 있다. 그리고 10대가 가장 많이 쓰는 결제수단인 문화상품권 결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인기순위에 이들의 취향이 많이 반영돼 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비주얼 노벨은 어린 친구들에게만 어필하는가?

국내 비주얼 노벨 시장의 잔혹사

이 질문에 답하려면 비주얼 노벨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비주얼 노벨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플레이어의 상황별 선택에 따라 엔딩을 맞는 게임이다. 일본식 미소녀 게임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운데, 본인이 매력적인 히로인과 연애를 하거나 등장인물들과 다양한 사건을 직접 겪는 듯한 엄청난 몰입감으로 플레이어를 유혹한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이거 게임 속에서 드라마 주인공이 될 수 있단 소린가! 대박인데!’ 싶겠지만, 큰 오해다. 다소 심하게 말하자면 국내 게임업계에서 비주얼 노벨은 계속 ‘죽쒀왔다’.

일본에서는 몇십만 장씩 팔리며 대박을 친 비주얼 노벨이라 해도 국내 정식 수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국내에서 제작·발매되는 비주얼 노벨 역시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겼다.

국내는 일본보다 규제 수준이 훨씬 높고 이미지나 대사 표현의 제약이 많아 성인의 만족도를 높이기 힘들다.

(사진은 다양한 미소녀 게임과 비주얼 노벨을 취급하는 소프맙 아키바 1호점)

왜일까? 먼저 비주얼 노벨의 시나리오가 강한 마니아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는 달리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특이한 판타지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고 장르로 치자면 라이트노벨에 가깝다.

일본에는 상당한 깊이를 지닌 마니아층이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존재하고 구매력 또한 작지 않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즐기는 이들의 규모가 작아 해외 인기 비주얼 노벨이라도 선뜻 수입해오기 힘든 것이다.

국내 심의 등급도 걸림돌이다. 일본 미소녀 게임에서 출발한 비주얼 노벨은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뿜어내는 매력을 통해 게이머마다 지닌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 특히 성인용 게임은 이야기의 분기점마다 등장하는 고수위 연애 장면으로 플레이어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국내는 일본보다 규제 수준이 훨씬 높고 이미지나 대사 표현의 제약이 많아 성인의 만족도를 높이기 힘들다. 결국 국내 비주얼 노벨 소비층은 10대-20대 중반의 어린 이용자로 좁혀지며 제작자나 유통업체 역시 몸을 사리게 된다.

그래도 비주얼 노벨이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

대형 게임 제작사들이 비주얼 노벨을 찬밥 취급할 때 끊임없이 비주얼 노벨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인디 개발사들이다. 어려운 프로그래밍 능력이나 화려한 애니메이션 기술 없이도 이야기와 일러스트로 제작이 가능하기에, 큰 수익을 바라기보다는 진심으로 비주얼 노벨을 좋아하는 팬의 마음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방구석에 인어아가씨(제작사 테일즈샵)‘는 국내 미소녀 게임중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한국형 미소녀 게임’의 롤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고유설화인 ‘인어를 구한 명씨 설화’를 토대로 국내 콘텐츠에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한국적 정서’를 최대한 녹여냈다.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 인어 여주인공을 보면 제작자의 참신한 컨셉에 감탄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테일즈샵이 만든 비주얼 노벨 ‘방구석에 인어아가씨’ 1주년 기념 월페이퍼.

또 심의 제재가 심한 국내 상황에서 고수위 연애 장면 없이 12세 관람가에 맞춰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구성한 것은 최선의 해법으로 보인다. 이 험난한 시나리오 속에서도 공들인 CG와 프로 성우의 풀 보이스로 3명의 인어 캐릭터들은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아빠 미소를 불러오는 해피 엔딩을 비롯해 7가지 다양한 엔딩으로 비주얼 노벨의 강점을 살려 남성 플레이어들을 빠져들게 했다.

새로운 시각, ‘보고 듣는 입체적 이야기’

반면에 기존 비주얼 노벨과 다르게 접근한 사례도 있다. 비주얼 노벨을 단어 그대로 풀이하자면 ‘시각적 소설’인데, 말 그대로 소설에 이미지와 사운드를 덧입혀 제작한 사례가 ‘MEMORIZE: 다시 길 위’라는 비주얼 노벨이다. 원작은 웹소설 플랫폼 조아라에서 6천 400만 조회수를 기록한 판타지 ‘메모라이즈’로 이미 검증된 시나리오를 채택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미소녀 게임이 연애의 흐름에 완전히 초점을 맞추고 마니아층이 좋아하는 특유의 말투를 많이 쓰는 데 반해, ‘MEMORIZE: 다시 길 위’는 굵직한 스토리 전개와 보다 일상화된 대화체를 사용한다.

조아라가 제작한 메모라이즈 비주얼 노벨 플랫폼 이미지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타게팅도 달랐다. 기존 비주얼 노벨이 국내 소수 마니아를 대상으로 한 반면, ‘MEMORIZE: 다시 길 위’는 웹소설 메모라이즈의 애독자를 1차 타겟으로 했다. 그래서 독자를 대상으로 먼저 이벤트와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원작을 모르는 게이머까지 타겟을 확장하며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비주얼 노벨이 살아남는 길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비주얼 노벨은 10대~20대 중반을 타겟으로 해야 하는 걸까? 그 외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국내 규제가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일본 미소녀 게임과 크게 닮은 비주얼 노벨을 만드는 것이다. 미소녀 게임을 찾는 남성 게이머는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에, 최대한 고수위 장면을 없애고 시나리오와 이미지, 사운드에서 강한 감성적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것이다. ‘방구석에 인어아가씨’에서 한층 더 나아가 국내의 좁지만 확실한 마니아층인 10-20대 중반의 남성을 공략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예 대중화를 염두에 두고 비주얼 노벨을 제작하는 것이다. 비주얼 노벨의 공식 따위 날려버리고, ‘텍스트로 보기에 너무 아까워! 여기에 이미지랑 음악 넣어서 좀더 괜찮게 만들어보자’하는 마음으로 괜찮은 소설을 골라서 ‘보고 듣는 입체 이야기’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MEMORIZE: 다시 길 위’는 출시 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해외 수출을 고려하지 않고 국내 시장만을 타겟으로 한다면 최대한 대중화할 포맷을 고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앞으로 비주얼 노벨은 마이너 게임의 한 분야가 아닌 미래지향적 책의 한 형태로 자리잡을지도 모른다.

치어스, 비주얼 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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