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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노벨, 웹소설 '버프' 받아 뜰까?

콘텐츠를 팔고 싶다면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이런 게임들이 ‘비주얼 노벨’이라고? 미안하지만 틀렸다.

(최지호) ‘비주얼 노벨’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몇몇 일본산 성인용 게임부터 떠올렸다면, 당신은 ‘호기심 왕성한’ 청소년기를 거쳐온 PC통신 세대일 것이다(아, 물론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비주얼 노벨’ 하면 여전히 국내에서는 야한(?) 게임, 연애 게임, 추리 게임을 꼽는다.

비주얼 노벨이 뭐야?

‘비주얼 노벨’은 사실 특정 회사의 브랜드명이다.

‘비주얼 노벨’이란 단어는 사실 일본 아쿠아플러스(당시 리프)가 1990년대 말 연이어 내놓은 시즈쿠(雫), 키즈아토(痕), 투하트(ToHeart) 등 미소녀 게임에 붙인 상표의 일종이다. 소년들의 로망,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투하트>가 히트하면서 이 단어가 게이머들 뇌리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아쿠아플러스는 ‘비주얼 노벨’이라는 상표 등록까지 마쳤기 때문에 정작 일본 현지에서는 유사한 장르의 게임을 ‘어드벤처’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비주얼 노벨을 어떻게 정의할까? 네이버 지식백과의 힘을 빌려 보면 다음과 같다.

“게임의 진행을 묘사하는 데 있어 텍스트의 비중이 극도로 높은 작품들을 총칭하는 장르명”

음, 너무 애매하다. 단순히 글의 비중이 많다고 해서 다 ‘비주얼 노벨’이라 부를 수 있을까? <다크룸> 같은 텍스트로만 진행하는 게임은 어떠한가?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이 장르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비주얼 노벨이 갖는 다음과 같은 특유의 인터페이스 때문이다.

1) 1인칭 주인공 시점

2) 캐릭터 일러스트

3) 하단 대화창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대사

하염없이 이어지는 대사를 읽다 지쳐 마우스 버튼을 연타하게 만드는 비주얼 노벨은 개인적으로 게임이라기보다는 문자 그대로 ‘눈으로 보는 소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비주얼 노벨의 핵심은 시나리오

‘비주얼 노벨 개발은 다른 게임에 비해 쉬운 편이다’ 정말 그런가?

비주얼 노벨 개발은 다른 게임에 비해 쉬운 편이다. 게임 기능이라고 해봐야 로드, 세이브 기능에 선택지 정도뿐이니 개발 난이도가 낮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기능적 이슈가 거의 적다고 봐도 무관하다. 또한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를 통해 게임을 보다 쉽게 등록·판매·유통 할 수 있어 일반인이 동인 게임을 만드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문제는 ‘재미’다. 스펙터클한 영상이나 속도감, 게임에서 구현되는 다양한 요소들이 생략되었기에 오로지 캐릭터 일러스트의 매력, 멋진 음향 그리고 무엇보다 스토리의 힘에서 모든 재미 요소가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릭터 일러스트에 있어서는 이미 엄청난 그래픽 효과를 자랑하는 대형 게임에 밀리고, 음향에서는 스타 효과를 노렸다가는 인건비 폭탄이 떨어진다. 그래서 답은 하나, 압도적인 스토리의 힘이 필요하다.

잘 뽑은 시나리오 하나가 잘 그린 일러스트 열 장을 압도하는 필살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비주얼 노벨은 시나리오를 담당하는 ‘스토리 작가’와 연출을 담당하는 ‘감독’의 비중이 무척 크다. 영화, 드라마를 제작할 때처럼.

요컨대, 비주얼 노벨은 기술적으로 쉬워 보여도 재미있는 구현이 어렵다. 게임보다는 작품을 시각화하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 작품을 내듯이 좋은 이야기를 쓸 줄 알아야 하며, 시나리오를 비주얼 노벨식 연출로 소화할 수 있는 감독의 역량이 크게 요구된다.

비주얼 노벨, 승률은 얼마?

모바일 게임 회색도시 공식 이미지 / ⓒ 4:33

비주얼 노벨은 인디 게임사에게 적절한 제작 형태라 할 수 있다. 대기업이 나서서 투자해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 사례로 대형 퍼블리싱 업체 4:33(네시삼십삼분)의 <회색도시 시리즈>의 경우,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가장 재미있는 비주얼 노벨 Top5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게임이 출시된 이후 개발자들은 권고사직당했다. <회색도시2>에서는 UCC 제작 툴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려 했으나, 결국 사내에서 ‘수익을 내기에는 부족했다.’ 라는 평을 받고 말았다.

하지만 인디 게임 개발 시점에서는 다르다. 비주얼 노벨은 보통 게임 개발팀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프로그래밍, 디자인 리소스를 줄여 ‘캐릭터’와 ‘배경’에 집중시키기 때문에 투입비용이 줄어든다. 따라서 시장 확장을 노리진 못하더라도 제작비의 감소를 통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거기다 팬층이 두터운 콘텐츠를 동인지 개념으로 제작하면, 일반 인디 게임보다 인지도 면에서는 훨씬 앞서기 때문에 시작이 좋다.

웹소설, 비주얼 노벨로 재탄생하다

콘텐츠를 팔고 싶다면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비주얼 노벨이 재미있으려면 시나리오와 연출이 중요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요즘 주가를 바짝 올리고 있는 ‘웹소설’이다. 검증된 시나리오와 이미 확보한 독자층으로 소위 ‘먹고 들어간다’.

웹소설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흡입력’이다. ‘연재’ 형태라는 특성으로 인해 한번 읽기 시작하면 완결될 때까지 빠져나오기 힘들다. 드라마 중독성과도 비슷하다. 중고등학생 시절 남학생이라면 판타지나 무협, 여학생은 할리퀸에 빠져 지낸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웹소설이 가진 강력한 ‘이야기의 힘’이 비주얼 노벨로 녹아들었을 때 좁은 비주얼 노벨 시장에서 얼마나 파급력을 넓힐지 자못 기대가 크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직접 선택하고 결과를 만들어가는 텍스트보다 훨씬 더 입체적인 이야기 경험이 얼마나 더 많은 마니아층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궁금한 것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는 한 작품이 있다. 2015년 12월 29일 판타지 레전드로 불리는 로유진 작가의 웹소설 ‘메모라이즈’(MEMORIZE)가 비주얼노벨로 옷을 갈아입고 새롭게 선보인 것이다.

최근 비주얼 노벨로 제작된 조아라의 인기 웹소설 <메모라이즈>.

(원작 로유진 / 제작 조아라&헤임달)

만약 ‘메모라이즈’의 비주얼노벨이 시장에서 작은 반향을 일으킨다면, 이를 필두로 웹소설의 비주얼노벨라이제이션이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각화 요소가 바탕이 된 웹툰이 드라마, 영화, 오페라 등 입체적 변주가 많았던 것에 비해 웹소설은 2차 저작물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 이제 웹소설의 변신을 지켜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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