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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번호 못 바꾸는 주민등록법은 위헌"

이르면 2018년부터 주민번호 변경 가능할 듯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를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헌법재판소가 23일 주민등록법 7조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씨넷코리아=권봉석 기자) 우리네 개인정보는 인터넷을 타고 바다를 건너 이름모를 나라의 어느 컴퓨터 속에 저장되어 있다. 정유사가, 통신사가, 관공서가, 하루가 멀다하고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덕분이다. 개인정보 가치도 떨어져서 한 명당 30원이던 것이 지금은 한 명당 10원이다.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천 명이나 되는 사람의 개인정보를 살 수 있다.

다른 건 다 바꿔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피해자가 됐을때 가장 화나고 짜증나는 것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알량한 사과문 따위가 아니다. 비밀번호를 바꾸고, 계좌 번호를 바꾸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카드를 재발급 받는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바꾸어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번호가 있다. 바로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13자리 번호, 주민번호다.

한국 사회에서 주민번호는 금융정보, 개인정보 등 모든 것을 묶는 키 역할을 한다. 이 번호만 알면 대포통장과 대포폰, 대포차를 구하고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남에게 수억 원대의 빚을 지게 만들수도 있다. 포털 사이트에 가입해 광고 블로그를 운영할 수도 있다. 이렇게 중요한 번호인데도 바꿀수가 없다. 바로 주민등록법 제7조 때문이다.

주민등록법 7조에는 누가 주민등록표를 관리하고 주민등록번호를 국민에게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있다. 주민번호를 기록하고 관리해야 하는 책임자도 정해져 있다. 하지만 주민번호가 유출되는 사고가 터졌을 때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지금까지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13자리 주민번호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주민번호 못 바꾸는 주민등록법은 위헌”

헌법재판소도 이런 주민등록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23일 ‘주민등록번호 변경 사건’(2013헌바68)에 대해,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없는 현재 주민등록법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밝혔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란 내 개인정보를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줄 수 있는지, 또는 언제까지만 이용하게 할 것인지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엄연한 개인정보인 주민등록번호를 정작 주민번호의 주인인 내가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을 통해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어 범죄에 쓰이는 사례가 벌어지고 있고,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주민번호를 함부로 다룰 수 없게 했다 해도 이미 유출된 주민번호로 피해를 보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등록번호 변경 절차가 없는 법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는 또 현재 적용되는 주민등록법을 2017년 12월 31일까지만 유지하라고 결정했다. 따라서 주민번호를 변경할 수 있는 절차를 담은 새 법을 2017년 말까지 국회에서 만들어야 한다. 이르면 2018년부터는 주민등록번호 유출이나 도용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주민번호 변경 신청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권봉석 기자bskwon@c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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