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넷코리아=봉성창 기자) 고전 자본주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대전제는 “수요가 공급을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이 낡은 이론은 이미 수정된지 오래다. 이제는 공급이 수요를 만드는 일이 전혀 새롭지 않다.
가령 스마트폰이 그렇다. 애당초 스마트폰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있었다기 보다는, 스티브 잡스와 그의 동업자들(줄여서 애플이라고 한다)가 만든 혁신에 전 세계가 놀랐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원하기 시작했다. 공급이 수요를 만든 것이다.
공급은 더 많은 수요를 이끌어내기 위해 제품에 다양한 가치를 부여한다. 가령 스마트폰에 지문 인식 센서를 달거나, 화면에 곡선 처리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TV에서는 대표적으로 3D나 스마트 기능, 커브드 디스플레이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기능 추가는 주로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더욱 기승을 부린다. 기존 제품의 사용자들에게 제품 교체의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또 더 비싼 가격을 받고 팔 수 있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 공급이 지속적으로 또 다른 수요를 만들어내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직원이 100명 미만인 중소기업 TG앤컴퍼니는 수요에 초점을 맞춰, 공급을 하는 전략을 세웠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를 분석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만 정확히 제품에 반영하고 원하지 않는 것들은 뺐다. 당연히 더한 것보다 뺀 것이 훨씬 많다. 이러한 뺄셈을 통해 비로소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루나폰의 초반 흥행과 뒷북 제품 발표회
지난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이후로 소비자들의 최대 관심은 합리적인 스마트폰 구매에 모아져 있다. 이제서야 조금씩 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TG앤컴퍼니의 루나폰은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러한 갈증을 해갈해준 듯 하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판매량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출시 이후 하루 평균 2천대 가량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출시가 한달 남짓 지났다는 점에서 약 5~6만대 가량이 출고된 것으로 추산된다.
TG앤컴퍼니는 출시가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인 지난 12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보통 신제품이 출시되기 직전 발표회를 갖는 것과 비교해보면 늦어도 보통 늦은 것이 아니다. 보는 관점에 다라서는 무의미한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개최한 이유가 있다. 이홍선 티지앤컴퍼니 대표가 대외적으로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다.
“많은 대기업들이 범하는 오류가 제품을 개발한 다음, 그것을 가지고 소비자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우린 그러지 말자고 했어요.”
TG앤컴퍼니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지난 3년간 포털 뉴스, 블로그, SNS 등의 게시물과 댓글 1천500만개를 무작위로 수집해 분석했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스마트폰 관심사가 매년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3년 전 대비 가장 관심도가 늘어난 3가지 키워드가 도출됐다.
“1위는 메탈 디자인, 2위는 생폰, 3위는 카툭튀”
그 결과 티지앤컴퍼니가 만든 첫 번째 루나폰은 일체형 메탈 디자인을 채택했으며, 케이스 없이 스마트폰을 그대로 쓸 수 있도록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 케이스와 보호필름을 기본 제공하고, 카메라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설계됐다. 지문 인식과 같은 부가 기능은 빼고 사전 설치 앱은 최대한 줄였다. 앱도 많이 만들면 원가 상승의 요인이 된다.
같은 전략에서 만들어진 티지앤컴퍼니의 첫 번째 작품은 빅디스플레이다. 모니터라고 하기에는 너무 화면이 크고, TV라고 하기에는 공중파 안테나 수신이 불가능한 요상한 제품 역시 빼기의 미학이 잘 살아있다. 3D, 스마트, TV 튜너 기능을 과감히 제거하고 대신 가격을 낮췄다.
중소기업이 잘하는 것, 대기업이 못하는 것
일각에서는 루나 스마트폰은 그냥 폭스콘에서 만들어진 스마트폰을 그냥 수입해서 파는 것에 불과하다고 저평가 한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제품기획과 디자인 그리고 설계는 TG앤컴퍼니에서 했기 때문에 단순 수입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루나폰의 원가를 낮출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폭스콘이 가진 막강한 생산 플랫폼 공유와 폭스콘의 강력한 바잉파워(Buying power)다. 가령 티지앤컴퍼니가 루나폰에 스냅드래곤801을 탑재하기 위해 퀄컴과 직접 AP 구매 계약을 맺었다면, 결코 이 가격에 출시되기 어렵다. 혹은 일체형 메탈 디자인을 위해 대기업도 아직 구매를 미루고 있는 최첨단 CNC 밀링 머신을 구매했다면 결코 가격을 낮출 수 없었을 것이다.
TG앤컴퍼니의 스마트폰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하다. 자신들이 원하는 디자인과 형태 그리고 포장을 폭스콘에 주문해서 완제품 형태로 사온다. 그 다음 마진을 붙여 이동통신사에 넘긴다. 그것이 루나폰의 가성비 비결이다.
애플과 경쟁하는 삼성전자야 그렇다 하더라도, 사정이 다급한 LG전자는 왜 루나폰과 같은 가성비적인 접근을 할 수 없는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문이 많다. 혹은 더 나아가 왜 우리나라 기업은 샤오미 처럼 하지 못하는가 하는 탄식도 나온다.
일단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거의 불가능하다. 단적으로 R&D 조직의 인력 규모가 차원이 다르다.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분기 영업이익이 2억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 수많은 대기업 직원들의 인건비와 어마어마한 마케팅 비용 및 유통 채널 비용을 모두 뺀 영업이익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에 마진을 크게 줄여서 박리다매로 팔자고 나서면 어마어마한 고정비 때문에 적자로 돌아설 것이 볼 보듯 뻔하다. 물론 줄어든 마진을 상쇄할 정도로 많이 판다는 보장만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도박에 가깝다.
반면 TG앤컴퍼니는 이홍선 대표까지 나서서 제품 개발에 관여한다. 이는 티지앤컴퍼니의 직원들에게는 대단히 피곤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정도로 모든 직원이 나서서 제품 개발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제품 업데이트에 반영하기 위해 루나폰 커뮤니티에 글들을 계속 읽고 있어요. 한 몇일 계속 읽어보니까 그 다음에는 우울증 걸리겠더라구요.”
아직은 1라운드다
악플에 장사없다고 했던가. 이홍선 대표는 대기업들이 잘 하는 것은 하지 말자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그가 의미한 건 혁신이나 세계 최초와 같이 R&D 비용이 많이 드는 것들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대기업 아니면 엄두도 못낼 분야만 용감하게 뛰어들고 있다. 그것도 소니도 두발 든 TV 시장과 HTC도 떠나 간 스마트폰 시장에 말이다.
티지앤컴퍼니는 대기업의 약한 구석을 노려 잽을 치는 아웃복싱 스타일로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이러한 전법은 아직까지는 꽤 주효했다.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대기업들로 인해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한없이 높아져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도 소비자들은 모든 것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또 한 가지는 잽으로만 버티기에는 상대방의 훅 한 방이 매우 강력하다는 사실이다.
이홍선 대표는 이번 뒷북 행사에서 후속작을 언급하고 싶었지만, 전략적으로 말할 타이밍은 아니었기 때문에 말을 아꼈다. 다만 후속작을 낼 계획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후속작을 잘 만드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미 판매된 5만대의 루나 스마트폰 사용자들을 만족시키는 일이다. 티지앤컴퍼니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한 달간 4번의 홈페이지 개편과 3번의 펌웨어 업데이트를 한 것이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