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ET Korea뉴스모바일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애플 걱정”

WWDC 2015 취재 후기

(씨넷코리아=봉성창 기자) 올해도 어김없이 애플이 개최하는 세계 개발자회의 WWDC가 열렸습니다. 전 세계 개발자를 위한 축제이자 정보 공유의 장이지만, 기자 입장에서도 애플에 초청된다는 것은 대단히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장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인데요. 전 세계 각국에서 취재를 위해 몰려온 기자들은 각 개발 세션에는 입장할 수 없지만, 미디어를 위해 마련된 조금 더 좋은 자리에서 애플이 준비한 키노트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키노트는 애플 홈페이지에서 생중계 하기 때문에, 단순히 기사 목적이라면 집이나 회사에서 행사를 보는 편이 훨씬 집중이 잘 되기도 합니다. 대신 이렇게 취재 후기를 쓸 수 없겠지요.

WWDC에서 어떤 내용들이 발표되었는가에 대한 분석인 이미 충분히 많은 기사들로 접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취재 후기를 통해 기사에는 잘 나오지 않는 현장 분위기를 전하려고 하는데요.

매년 WWDC를 취재하면서 느끼는 첫 번째 감정은 ‘데자뷰’ 입니다. 늘 똑같고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분위기, 똑같은 발표 스타일. 개발자들은 입장을 위해 긴 줄을 서 있고, 애플은 행사 직전까지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안 알려주는 것이 당연한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보통 대부분 기업들은 기자들에게 행사 전 미리 정보를 알려주고 대신 엠바고를 요청합니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일제히 보도가 나가지요. 애플은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행사 전날 모스코니 센터를 방문하면 애플이 설치한 현수막 등을 보고 각국 기자들은 열심히 유추해 내는데요. 사실 맞추기는 쉽지 않지요. 기자들이 무슨 명탐정 코난도 아니고 말이죠.

“내가 1빠다”

행사 전날 오후 3시쯤 얼마나 줄이 서있나 보러 모스코니센터를 방문했습니다. 한 10명 정도가 이미 의자까지 준비해서 일찌감치 줄을 서있었습니다. 첫번째로 줄을 선 브라이언 키퍼씨에게 “왜 줄을 서느냐”는 흔하고 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돌아온 한마디는 “Tradition” 이었습니다. 전통이라는 것이지요. 전통 맞습니다. 애플하면 줄을 서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인데요. 올해도 사람만 달라지고 그 전통은 이어졌습니다. 애플에 따르면 올해 행사에 WWDC를 참가한 사람 중 80%가 처음 참가한다고 하네요.

WWDC가 열리는 6월 초 샌프란시스코는 은근히 춥습니다. 우리나라 날씨를 생각하고 반팔을 입고갔다가는 낭패를 보게 되는데요. 그래서 애플이 개발자들에게 주는 기념품도 긴팔 집업 자켓입니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상당히 따뜻했는데요. 그래도 개발자들은 꿋꿋이 그 긴팔 집업 자켓을 입더군요.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애플이 주는 WWDC 기념 옷에는 절대 애플 로고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기업이 단체 제작한 옷에 기업 이름을 인쇄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인데요. 이에 대해서 WWDC에 참석한 한 외국인 개발자에게 물었더니 꽤 재미있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애플이 자신들을 애플 직원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존중해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한 개만 더 모으면 애플이 소원을 들어줄지도…”

다음날 발표 당일 행사장에 입장했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모스코니 센터 2층과 3층에 설치된 ‘iOS, OSX, watchOS’라고 쓰여진 간판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2층과 3층의 OS 순서가 바뀌어 써있었다는 것인데요. 3층은 watchOS, OSX, iOS 순이었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현장에서는 애플이 모든 OS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순서를 매길 수 없다는 해석이 나왔는데요. 한마디로 이제 애플 OS 3대장이 완성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겠지요. 애플의 깨알같은 메시지 전달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애플은 이런 기호학적 메시지 전달을 즐겨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일루미나티나 프리메이슨 같은 음모 이론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WWDC에서는 취재 편의를 위해서 보통 미디어가 먼저 입장을 하고, 그 다음 개발자들이 입장을 합니다. 행사장은 3층인데요. 여기에서 일단 세계 각국의 미디어들이 입장을 대기합니다. 여기에서는 리코드의 월터 모스버그나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IT컬럼니스트 데이빗 포그와 같은 같은 유명 기자들도 만날 수 있는데요. 주로 애플이 무슨 발표를 할지 수다를 떨더군요. 그러다가 문이 열리면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 뜁니다. 어린이날 놀이공원 문이 열리듯 수많은 기자들이 우르르 뛰어들어갑니다.

씨넷닷컴 편집장 스캇 스테인과 함께 찰칵

이렇게 입장을 하고도 자리에 앉아서 1시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합니다. 애플은 본격적인 발표가 시작되기 전까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데요. 음악을 잘 들어보면 선곡이 절묘합니다. 여러 곡들이 순차적으로 나오는데 뭔가 다 의미심장한 가사들을 가지고 있지요.

워낙 영어와 팝에 약해서 그것들을 전부 해석해드릴 수는 없지만요. 한 곡을 고른다면 마크 론슨의 ‘업타운 펑크’가 있었습니다. 브루노 마스가 피쳐링에 참여한 상당히 신나는 곡인데요. 반복되는 후렴구 가사가 바로 “Don’t Believe me just watch”였습니다. 해석하면 “나를 믿지말고 그냥 지켜봐”라는 것인데요. 이날 발표된 watchOS와 애플 워치의 알림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선곡된 노래라면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요? 나를 믿지말고 워치를 믿어라는 의미로 말이죠. 물론 판단은 독자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WWDC에 참가한다는 것은 상당한 돈과 시간 그리고 열정을 필요로 한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키노트가 끝나면 바로 점심시간입니다. 오후 세션에 참석해야 하는 개발자들은 점심을 도시락으로 간단히 해결하는데요. 이들 개발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는 일부 업체들이 공짜로 도시락을 나눠줍니다. 한 업체는 자신들이 만든 앱을 설치한 것만 보여주면 점심을 준다고 열심히 홍보를 하네요. 지난해에는 우버가 무료 쿠폰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공짜 티셔츠 등도 얻을 수 있고요. 모스코니 센터 안에서는 어떤 외부 기업도 마케팅 활동도 허락하지 않지만, 밖에서는 애플도 딱히 제지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자유지요. 잘만 찾아보면 꽤 짭짤한 쿠폰을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키노트가 끝나면 장장 5일간 개발자 세션이 진행됩니다. 미디어 패스로는 출입이 안되지만, 키노트에서 다루지 않은 개발자들을 위한 세세한 각종 정보를 설명한다고 하네요. 또한 저녁에는 개발자들을 위한 다양한 파티도 샌프란시스코 곳곳에서 열린다고 하는데요. 제 직업이 기자가 아니라 개발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수십년차 선배 기자들은 “애플도 곧 망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권불십년이라고 IBM, HP, 델, 야후와 같은 승승장구하던 기업들이 하향세를 걷는 모습을 직접 보아왔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WWDC를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열정적인 개발자 지원부대가 있는 한 애플 시대는 좀 더 오래가지 않을까요? 이러나 저러나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애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