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넷코리아=권봉석 기자) 바둑은 기원 전 2천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가장 오래된 지적스포츠 중 하나다. 가로·세로 각각 19줄, 42.5×45.5센티미터 공간에서 단 두 사람이 벌이는 소리없는 전쟁이다. 집을 뺏고 뺏기며 세력을 키운다는 면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등 이스포츠와도 닮은 면이 있다.
통계 기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현재 전 세계에서 바둑을 즐기는 사람은 약 4천 200만 명 정도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와 비슷한 규모의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 어디선가 얼굴을 맞대고, 혹은 인터넷을 통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다.
왜 수퍼컴퓨터는 바둑을 정복하지 못했나
IBM 수퍼컴퓨터 딥블루가 러시아 체스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은 것이 20여 년 전이다. 역대 체스 경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경우의 수를 학습시킨 결과였다. 게다가 현재는 수퍼컴퓨터의 기억력과 사고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머신러닝(기계학습)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첨단 기술이 등장했다. 인공지능은 체스를 거의 완벽히 정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수퍼컴퓨터는 바둑을 아직도 정복하지 못했다. 한 수 한 수를 둘 때마다 따져야 하는 경우의 수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먼저 361개 자리 중 어느 곳에 바둑알을 두어야 하는지 결정을 해야 하고, 한 수를 두고 나서 다음 수까지 가지치기 식으로 몇 수 앞을 내다 보아야 한다.
단순히 기억력만 가지고는 이길 수 없는 바둑의 특성도 문제다. 체스는 장기말마다 역학관계가 정해져 있지만 바둑알은 하나같이 평등하다. 바둑판 위에 바둑알이 놓인 위치를 통해 그림이 그려지고 세를 불리고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우세를 가린다. 일종의 공식과 같은 ‘정석’이 있긴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세해 보였던 판세가 허를 찌르는 한 수 때문에 순식간에 뒤집히기도 한다.
승률 99.99% 인공지능, 알파고 온다
하지만 오는 3월 서울에서 전세계 바둑 랭킹 1위인 이세돌 9단과 대국을 벌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는 체급이 다르다. 100만 번 이상 대국을 통해 경험을 쌓았다는 것이 눈에 띈다. 프로 기사가 1년에 1천 번 바둑을 두며 수를 연구한다고 가정할 때 알파고는 1천년 분의 수련을 쌓은 것이나 다름없다.
수련을 바탕으로 500회 가량 치른 대국에서도 알파고는 딱 한 번 졌다. 승률이 무려 99.99%에 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피로를 느끼고 이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인간과 달리 피로를 느끼지도 않는다. 한 수를 두는 데 걸리는 시간도 0.1초에서 10분까지 자유롭게 조절한다. 한 마디로 세다.
실제로 알파고는 2015년 10월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 구이를 딥마인드 런던 본사로 초청해 총 다섯 차례 대국을 진행했다. 결과는 5전 5승, 알파고의 완승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최초로 프로 바둑기사를 누른 순간이었다.
알파고가 센 이유는 “지능적인 분석”
알파고는 구글이 2014년 인수한 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했다. 28일 한국 기자를 대상으로 한 원격 설명회에서 알파고의 강화 학습을 총괄한 데이비드 실버는 알파고가 센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알파고는 두 개의 다른 신경망을 이용해 현재 게임을 분석한다. 정책망은 어디에 수를 두어야 할지 유리한 수만을 집어내고, 가치망은 그 수를 둔 위치에서 누가 우세한 지 평가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3천만 개의 수를 훈련한 다음 실제 기사들의 대국을 예측시킨 결과 57%까지 예상할 수 있게 됐다. 알파고는 승리만 생각한다”
“진짜 프로인 이세돌 9단의 소감 기대한다”
알파고는 오는 3월 서울에서 세계 바둑 랭킹 1위인 이세돌 9단과 대국을 가진다. 딥마인드 데미스 하사비스 CEO는 “알파고를 만든 사람들은 결국 아마추어지만, 이세돌 9단은 진짜 프로다. 알파고 엔지니어들은 이세돌 9단과 대국을 치른 다음 어떤 소감을 들을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 가능성은 반반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모인 기자들의 의견 역시 반반으로 갈렸다. 사람보다 더 냉정하고 정확하게 수를 두는 알파고가 승리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임기응변에 능한 이세돌 9단이 의외의 수를 둘 경우 알파고가 패배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의견에는 모두 동의했다.